1. 고려․조선조 때 있었던 유학교육의 최고학부
2. 신라시대는 국학(國學), 고려시대는 국자감(國子監) 등으로 불리었다. 조선조 시대에는 태조 7(1398)년에 숭교방(崇敎坊; 明倫洞)에 창설되었다.
3. 공자를 비롯한 성현을 제사하는 문묘(文廟)와 유학을 가르치는 명륜당(明倫堂), 그리고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 양재(東西兩齋) 및 부속 건물의 총칭이다.
4. 문묘의 정전(正殿)인 대성전(大成殿)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의 유학자(94명)와 우리나라 유학자(18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5. 성균관의 관원으로는 지관사(知館事; 弘文館․藝文館大提學)을 두고 전임관원으로 대사성(大司成) 1명, 제주(祭酒) 2명, 사성(司成) 1명, 사예(司藝) 2명, 사업(司業) 1명, 직강(直講) 4명, 전적(典籍) 13명, 박사(博士) 3명, 학정(學正) 3명, 학록(學錄) 3명, 학유(學諭) 3명이 있었다.
6. 박사 이하는 정원 외에 봉상시(奉常侍)의 관원과 사학(四學)의 훈도(訓導)가 겸직하였다.
7. 성균관 유생의 정원[額]은 200명으로 생원(生員)․진사(進士)만 들어갈 수 있었으나 부족할 경우에는 사학의 생도 가운데서 보충하였다. 뒤에 경비부족으로 120명, 말기에는 100명으로 감축되었다.
8. 구한말인 1895년에는 성균관 경학과(經學科)를 부설하여 근대식 유학교육을 교수하였으며, 일제시대에는 문묘 향사의 기능만이 유지되다가 경학원(經學院)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이는 명륜전문학교에서 성균관대학교로 발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