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려 예종 대에 세워진 유학 및 무예의 고등교육기관
2. 예종 4(1109)년 7월에 관학을 진흥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3. 칠재의 구성은 전공과목에 따라서 여택(麗澤; 주역전공), 대빙(待聘, 상서전공), 경덕(經德; 모시전공), 구인(求仁; 주례전공), 복응(服膺; 대례전공), 양정(養正, 춘추전공), 강예(講藝; 무학 전공) 등 7개의 재로 되어 있었는데, 크게 유학과 무학으로 구분하기도 하였다.
4. 당시 관료들은 칠재의 설치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아서 실제 교육이 시작된 것은 예종 14(1119)년에 유학 60명, 무학 17명을 배치하면서부터였다.
5. 이 중에서 무학은 문신들의 반대로 인종 11(1133)년에 폐지되었다.
6. 이후의 운영상황은 명확하지 않지만, 고려 말까지 각 재의 명칭이 보이는 것을 보아 계속 존속하였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7. 칠재의 성격에 대해서는 송나라의 삼사법의 영향을 받아 국학에 설치된 상급교육기관이라는 설과 국자감의 조직을 개편한 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